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세 음악/역사 (문단 편집) == 초대 교회음악 == 초대 교회의 음악 활동은 [[성경]]에서도 나타나는데, [[마르코 복음서]] 14장 26절을 보면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산으로 갔다."'''는 구절이 나오며 [[에페소서]] 5장 19절에도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라고 나온다. 4세기쯤 되면 신자들이 들고 입지가 상승함에 따라 큰 건물에서의 공식적인 모임으로 성장하였고,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사제]]들 여러 명이 돌아가며 [[시편]]을 노래한 후 기도를 올렸다. 당시 교부들은 동시에 단순한 오락을 위한 음악은 거부하였고 오로지 신앙심을 더욱 고취시키는 음악만 허용하였다. 자세히 보자면 교부들은 [[기독교]]의 가르침과 거룩한 사고에 마음을 열게 하는 음악만이 가치있는 음악이라 생각하며, 가사없는 음악 즉 기악음악은 철저히 배척하였다. 그리하여 교회에서는 그로부터 천년 동안이나 무반주로 노래되었다. 이러한 음악적 견해는 후의 [[칼뱅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비록 [[성경]]에서는 결코 기악을 금기시한 적이 없지만.[* 구약 시대의 찬미가들을 모아놓은 [[시편]]만 보아도 비파, 수금, 피리, 나팔, 북 등 온갖 악기들을 거론하고 그 악기를 연주하며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구절이 심심찮게 나온다.] 이런 초기 교회의 음악은 '''시편창'''과 '''찬가창'''로 이루어져 있다.[* 둘이 구별은 뚜렷하게 되지 않았으나 4세기부터 뚜렷히 구별되기 시작한다.]시편창은 시편조[* 이러하나 시편조에는 교회선법으로 발전하는 8개조와 순례자 조라는 하나의 조가 더 있었다.]라는 원시적인 선율에 맞춰 시편을 낭송하는 것이었다. 현대에도 볼 수 있는 합창과 사제가 교대로 불렀다. 선율은 도입부, 낭송음, 중간종지부와 종지부로 구성되었으며 굉장히 단순했으며 기보되지도 않았다. 이런 단순한 시편은 후에 갈수록 후렴이 삽입되면서 달라지기 시작된다. 끼워넣을 후렴구와 선율을 부드럽게 연결시키기 위해 시편의 끝을 종지음 외의 음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아져 시편창은 시편조와 잘 맞기 않게 된다. 찬가창은 시편창보다 리듬이 뚜렷하며 선율적이기도 하다. 찬가창의 시작은 대체로 [[암브로시우스|성 암브로시오]]가 작곡한 4곡을 시작으로 하게 된다. || [youtube(U-AsvDn87fo)] || || 성 토마스 아퀴나스 작시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Tantum ergo|입을 열어 찬양하세(Pange, lingua)]]에 의한 그레고리오 성가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